가자지구
가자지구(Gaza Strip)은 서 아시아의 팔레스타인 남서단에 있는 구역으로,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의 지중해 해안을 따라 폭 5~8km, 길이 약 50km에 이르는 가늘고 길게 뻗은 해안지역이다. 요르단강 서안지역(West Bank)과 함께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를 구성한다.
가자지구는 이 구역 내에 있는 최대의 도시 가자(Gaza)의 이름을 따서 가자지구로 불려지게 됐는데, 가자지구에는 가자 외에도 한유니스(KhanYunis), 라파(Rafa) 등의 도시가 있다. 가자지구 인구 대부분은 팔레스타인인으로, 이곳은 오랫동안 대이스라엘 저항세력의 중요한 거점이 돼 왔으며 팔레스타인인과 유대인 정착민이 서로 격리된 채 살아가고 있다.
가자지구의 역사
가자지구는 4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오래된 지역이며 이집트에서 시리아에 이르는 통로의 요지로 예로부터 그리스, 로마, 아랍, 오스만투르크 등 여러 세력에 의해 정복되기도 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영국은 전쟁수행을 위해 시오니즘을 지지함과 동시에 독일측인 오스만튀르크의 후방교란을 위해 아랍인의 협력을 요청하였고, 양자에 대해 팔레스타인을 내주겠다는 모순된 언질(아랍에 대해서는 맥마흔선언, 유대에 대해서는 밸푸어선언)을 주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팔레스타인은 영국의 위임통치하에 들어갔으며, 밸푸어선언으로 팔레스타인에 국가재건을 약속받은 유대인이 내주(來住)하면서 이곳에 정착하고 있던 아랍인과 충돌이 생기게 되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팔레스타인은 제1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군과 이집트군의 격전지가 되었다. 1949년 이스라엘·이집트 휴전협정에 의해 이집트에 편입되었다. 1956년 수에즈 전쟁으로 이스라엘이 점령하였다가, 1957년 다시 이집트의 영토가 되었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 다시 이스라엘이 시나이반도와 함께 점령하였다. 이 지역을 점령한 이스라엘은 유대인 정착촌 21개를 만들고 유대인들을 이주시키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 7000~8000여 명의 정착민이 거주하기도 하였다. 이에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 정착촌이 불법 점거라며 철수를 요구하였다.
그러다 19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가 점령지 잠정자치원칙에 합의하면서 1994년 5월부터 팔레스타인들의 자치가 시작되었다. 2006년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온건파인 파타를 누르고 총선에서 승리한 뒤 2023년 10월 이스라엘과 전쟁을 할 때까지 가자지구에 대한 독자적인 통치를 하고 있다.
가자지구 역사의 전쟁들
제1차 중동전쟁 (1948년 ~ 1949년, 이스라엘 독립전쟁)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이로 인한 팔레스타인 문제로 아랍 연합군(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등)과 이스라엘 간에 벌어진 전쟁으로, 1948년 5월 16일에 이집트 전투기들이 이스라엘을 폭격했고 전 아랍이 전쟁 상태에 돌입했다. 이에 이스라엘 민간인들이 부족한 무기들로 싸웠고 20일 넘게 일어난 전투 끝에 결국 유대인들은 예루살렘과 텔아비브를 지켜내 1948년 6월 11일 스웨던의 중재로 휴전 협상이 시작되었다. 또한 미국의 지원으로 현대적인 전투 군대로 변한 이스라엘군은 모셰 다얀 장군의 지휘 아래 이집트 카이로, 요르단 암만, 시리아 다마쿠스를 폭격해 승리를 거두면서 1949년 2월에 평화 조약을 조인하면서 제1차 중동 전쟁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이 났다.
수에즈 전쟁 (1956년, 제2차 중동전쟁)
1956년 말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침공하고, 여기에 영국과 프랑스가 개입한 전쟁이다.
1956년 10월 29일 이스라엘군이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를 침공하면서 전쟁이 발발했다. 11월 5일에는 영국과 프랑스의 공수부대가 수에즈 운하를 점령했다. 그러나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유엔의 철군 요구와 세계 여론의 압력이 급증, 3국은 정치적 곤경에 놓이게 되었고, 11월 14일 유엔 총회에서 유엔 긴급군의 파견을 내용으로 하는 정전안이 채택되자 영국과 프랑스는 즉각 철수하였다.
제3차 중동전쟁 (1967년, 6일 전쟁, 6월 전쟁)
수에즈 전쟁 이후 1967년 6월까지 이스라엘과 주변국 사이의 긴장은 높아졌다. 이스라엘은 티란 해협에 대한 봉쇄는 전쟁 명분이 될 것이라 말하며 1956년 이후의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5월 말 가말 압델 나세르는 이스라엘 선박에 대해 해협들이 봉쇄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후 이집트는 이스라엘과의 국경을 따라 군을 전진시켰고, 6월 5일 이스라엘은 이에 대항해 이집트 공군기지에 이스라엘 입장의 예방적 선재공습을 가했다. 이집트는 기습에 당했고, 이스라엘군은 소수의 피해만 입은채 이집트 공군을 거의 궤멸시켰다. 이집트 지도자였던 나세르는 시나이반도에서 이집트군을 철수시켰다. 이스라엘군은 서쪽으로 계속 진격하며 이집트군에 큰 손실을 입혔고 시나이반도를 정복하는데 성공했다. 6월 11일 휴전 협정이 체결되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로부터 가자지구와 시나이반도를, 요르단으로부터 동예루살렘과 요르단 강 서안 지구를, 시리아로부터 골란 고원을 획득했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을 목표로 1964년 결성된 비밀 저항조직으로, 1964년 1월 이집트 카이로에서 개최된 제1회 아랍수뇌회의에서 그 설립이 결의되고 그해 5월 예루살렘에서의 제1회 팔레스타인 민족회의에서 그 설립이 선언되었다. 1969년 야세르 아라파트(1929~2004)가 PLO 의장으로 선출되면서 항공기 납치, 뮌헨올림픽 대학살, 자살특공대 차량폭탄테러 등 서방국가에 대한 무차별 테러를 자행해 악명을 떨치며 팔레스타인 문제를 국제적 이슈로 이끌어 냈다. 아라파트는 1973년 10월 제4차 중동전쟁 이후 PLO가 국제테러에 개입하지 않는 대신 국제사회가 PLO를 인정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후 1974년 10월 아랍정상회담에서 PLO를 400만 팔레스타인인의 유일한 합법기구로 인정하였고, 그해 12월 국제연합(UN)도 PLO를 유엔의 정식 옵서버로 인정하였다. 1988년 11월 PLO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수립을 천명했는데, 모든 테러를 중지하고 평화를 지키겠다는 조건을 내세워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립을 요구해 그해 70개국의 승인을 얻었다. 그리고 1993년 9월 이스라엘과 가자·예리코시의 자치에 관한 오슬로 중동평화협정에 참여하였고, 현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NA)로 변신해 합법적으로 존속하고 있다.